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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이란 크고 방정하고 넓은 이치를 깨닫는 것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1-10-15(13:45:12) · 조회수 | 2,024 IP | 112.184.248.197
  • 화엄경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으로 크고 방정하고 넓은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의 꽃같이 장엄한 경이란 뜻입니다.

     

     7처 8회 34품의 60화엄, 또는 7처 9회 39품의 80화엄으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분량의 화엄경 경전은 교리면에서는 십지품, 실행면에서는 입법계품을 중심으로 설해져 있으며 특히 선재라는 소년이 등장하는 입법계품은 구도의 자세와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경전을 수레로 읽고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는다 하여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상의 실천이 없다면 공허한 말의 메아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중국의 화엄종 대종찰에는 삼천명에 달하는 많은 승려들이 여법하게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천일동안 계속 되어온 화엄경 법회가 끝을 맺는 회향날 이었습니다.

     이윽고 법사가 법상에서 화엄경의 요지를 말했습니다.

    "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성품이 오직 마음에서 일체가 조작된 것으로 관하라."

    법사의 이 게송이 끝나자 설법당 쪽 문에서 어떤 노파가 사람들을 마구 이리저리 밀치며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법회에 모인 청중들이 노파 앞을 막아섰는데 그 노파는 "법문도 들을수 없냐" 며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법사가 다시 법문을 시작하려 하자 이번에는 노파가 업고 온 아이가 울어대기 시작했고 모든 청중들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노파는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고 청중들도 그 노파를 꾸짖고 싶었지만 법회가 더욱 소란스러워질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소란스럽던 법회가 끝나고 대중들이 밥 공양을 하려 하는데 또 노파가 그 틈에 끼어 들어와 "내가 제일 배가 고프니 먼저 밥을 달라."며 성화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대중들은 미운 생각들이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그 날은 삼년 동안의 화엄경법회를 성스럽게 회향하는 날이어서 참고 그 노파에게 먼저 밥을 퍼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파는 이번에는 등에 업은 아기의 밥도 함께 달라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노파를 질책하자, 잠자고 듣고 있던 노파가 별안간 업고 있던 아기를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노파가 내동댕이쳤던 아기는 푸른 청사자로 변하고 더럽고 악취가 풍기던 노파의 모습은 향내음이 풍기는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일이 벌어지자 모든 대중이 노파의 발 아래 엎드려 예배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문수보살을 청사자를 타고 허공으로 멀리 사라지면서 대중에게 한마디 법음을 남겼습니다.

    " 중생들아 평등한 마음을 가지거라. 언제는 행색이 더럽다고 내치더니 이제는 거룩하다고 예배를 하는구나. 더럽고 훌륭한 것은 행생에 있는 것이 아니고 평등하고 평등하지 못한 마음에 있느니라. "

     

    이 이야기는 법을 따르는 것에는 그 외양과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불법에 보리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이 바로 이 노파와 문수보살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볼 일 입니다.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에 이르기를

    " 차라리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부처님의 이름을 들을지언정 한량없는 낙을 받느라고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함을 원치않네, 지난 옛적에 수없는 겁 동안 고통을 받으며 나고 죽는데 헤맨 것은 부처님의 이름을 못들은 까닭이네" 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무슨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돈과 재물, 권력과 명예는 한순간의 기쁨이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깨달음에의 희열은 맛보는 것은 영원한 기쁨일 것입니다.

     

    - 2003년 11월 5일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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