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Script 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콘텐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견적문의 ☏ 010-6338-5167


  불상, 단청, 불화 등을 조성하거나 그리는 사람을 ‘불모(佛母)’라고 부른다. 기예는 물론이고 연륜과 신심까지 겸비했을 때 비로소 ‘불모’라 한다.

  수많은 이들의 귀의처가 되는 불보살상을 조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하물며 당대는 물론 조부(祖父)로부터 불모의 가업을 물려받아 자식대에까지 불상을 조성하고 탱화를 그리는 것이 얼마나 지중한 불연인가.

  서울 망우1동에 자리잡은 해동불교미술원에서 불모의 연을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신석윤 원장 가족을 만났다.


“부처님이 돈으로 보여서는 안됩니다. 시주 은혜 무서운 줄 알고, 욕심없이 불사에 임해야 합니다.”
  신석윤 원장은 “불모라는 말의 가치가 떨어진 데에는 상업성이 주 원인”이라고 개탄하며, 불모 집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신 원장의 불모 가계(家系)의 제 1대는 조부인 신두영 선생이다.
  철원 민통선내에 있던 심원사 나한전에 곱돌로 오백나한을 조성하는 등 많은 불사를 한 불모였다.
  이 500나한은 지금도 폐사가 된 절에 남아있다고 한다.
  조선말 대궐에서 장인으로 일하던 조부는 집에서는 늘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제 2대는 1985년 70세를 일기로 입적한 스승이자 숙부인 신상균(1985년 입적) 선생으로,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시멘트)과 불광사 불사 등 많은 작품을 남긴 분이다.
  신 원장이 4세때 선친이 작고하자 숙부님은 친 자식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도 조카를 길러주고 대학(서라벌 예술대)까지 보내주었다.
  신상균 선생은 50년전, 고등학생인 그에게 처음 붓대를 쥐어주며 몇가지를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개인의 기술이나 기능에 자만심을 갖지 말거라.”
“금전에 연연하지 마라.”
“부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신심껏 최선을 다하거라.”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으므로 항상 관음주력을 하여 원만한 불사가 되도록 부처님께 기도해라.”
“초심으로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거라.”

  당대의 대불모인 마곡사 금호스님-보응스님-일섭스님의 맥을 이은 숙부는 50년대에 1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신 원장을 지도했다.
  숙부는 62년 법주사 미륵대불 불사와 관련,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계약서를 주고받을 정도로 걸출한 불모였지만, 생활은 늘 ‘밥 한끼’ 먹을 정도로 소박하기만 했다.
  당시는 몹시도 가난한 시절이어서 아침에 된밥을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죽을 끓여 먹어야 했다. 배가 고픈데다 무거운 불상도 들어야 하고, 사포(沙布)질로 살갗이 벗겨지는 등 3D 업종의 전형이었다고나 할까. 웬만한 견습생은 서너 달도 못 버티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신 원장은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이와 같은 숙부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기며 외길을 걸어왔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울시 마포 석불암 미륵불(23척) 조성, 무량사 법당 신축과 다보탑 건립 및 천상천하 원불조성, 경기 남양주시 금곡 유릉 코끼리 조각 보수, 은진 관촉사 미륵불 보수, 경복궁내 경천사지석탑 보수공사 등 전국 산사에서 쉬지 않고 불사에 전념했다.

  신 원장은 한번 일에 몰두하면, 불상과 하나가 된다. 한창 일할 때는 낮잠 1시간, 밤잠 1시간 두 시간만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붙이며 일할 정도로 불사가 즐거웠다. 탱화를 그리다 엎어진 채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인지 물감을 들던 왼쪽 손등과 오무려 있던 발등이 요즘 몹시 아파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있다.

  불모로서의 외곬수 인생을 살아온 신 원장 집안에는 불사에도 고집스런 원칙이 있다. 가족을 포함해 10명의 직원이 일하는 불교미술원이지만, 보시금의 많고 적음을 계산하지 않았으며, 사찰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았다.
  부인 한기운 보살의 말은 놀랍기까지 하다.
  “남편은 순수한 예술가죠. 가격을 알면 더 잘 그리거나 못 그리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아예 모르는 마음이어야 의연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조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시죠.”
  이런 집안의 가풍은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 전해졌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장남 현규씨, 상지대학교 재학시 대불련 원주지부장을 역임한 현일씨도 불상 및 탱화 불모의 가계를 이었다.
  부인 한기운 보살도 불상을 조성하고 있으며, 게다가 신 원장의 형님인 신상무씨와 동생인 신광호(법주사 미륵청동대불 조성)씨도 내로라하는 불모여서 일가 친척이 불모 집안인 셈이다.

  “집안에서 하는 일 자체가 부처님 조성하는 것이고 보니 특별히 앉혀 놓고 불교공부 시키지 않아도 부모님 행동 따라 하다보면 그것이 마음공부였죠.” 차남 현일씨의 말이다.

  신 원장네 가족은 두 아들 덕분에 군 포교 및 청소년 포교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군 법당에 모시는 불상의 경우는 합성수지 재질의 특수불일 경우 가능한 무상보시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군 법당과 경승실, 종립학교 법당 등에 대해서는 2~3자 크기의 특수불을 무료로 보시하겠다는 것이 해동불교미술원(☎ 02-2208-4848)의 발원이다.
  신 원장네 부자는 “가문의 명예와 불모로서의 긍지를 함께 전수하기 위해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정진하겠다.”고 말했다.